와룡동

한줄기 삐친맥 늘 한뫼아래

한빼검의 처음 닦은 굳고굳은 터

그 우에 우뚝 나선 우리 창동은

인류문화 발전하려 떨쳐일어나…

(창동학원 교가)

얼마 전 기자는 연변 최초의 4대 중학교의 하나였던 와룡동 창동학원 원적지를 다시 찾았습니다. 23년 전에 길림성 연길시민주소학교 6학년 1반 학생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적이 있던 유서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23년 전만 해도 민주소학교는 학생이 300명을 웃돌았는데 지금은 학생래원 고갈로 한족학교로 변해있었습니다.

와룡동은 지금의 연길시 소영향 민흥촌 3대, 4대를 가리킵니다.

마을 북쪽 언덕에 올라서면 창동학원의 선배들이 1932년 7월 12일에 세웠다는 ‘사은기념비(师恩纪念碑)’의 하얀 모습이 시야에 안겨옵니다.

창동학원은 민주소학교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피에 젖은 ‘15만원 탈취 거사’도 바로 여기 와룡동의 창동학원 선배들이 획책하고 성공을 이룩하였던 것입니다. 지은지 100여년 되는 최봉설 투사의 옛집도 바로 와룡동에 있습니다.

그날 몇십년 전에 창동학원을 졸업했다는 윤희섭, 지상근, 리종국 할아버지와 민흥촌 촌장 김아저씨가 민주소학교 학생들을 맞아주었습니다.

윤할아버지는 학생들에게 와룡동의 력사와 창동학원의 유래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와룡동의 력사는 그때 벌써 100년이 넘었습니다. 일찍 120여년 전에 조선 함경북도 회령에서 살던 최종석이라는 분이 고향사람들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와 와룡동을 개척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와룡동은 1883년경에는 제법 큰 부락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때 우리 조상들은 일제의 암흑한 통치를 피해 살길을 찾아 바로 여기 와룡동에 이주해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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