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준

승아는 침대에 누운 맵시로 잠에 취하면서 “슛!”하고 입바람소리를 냈다. 발로 뽈을 냅다 차주었던 것이다. 뽈은 날아가 상대쪽 꼴대문에 펑 구멍을 뚫었다.

“야, 꼴이다!”

소리를 지른 승아는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얘야, 간 떨어지겠다. 뽈귀신 같은게. 그럼 우리 뽈 차러 갈가?”

동그란 모양으로 구겨진 시험지가 승아의 호주머니에서 튕겨나와 희떠운 듯이 소릴쳤다.

“넌 누구니!?”

발딱 일어나 앉은 승아는 얼떠름해졌다.

“우린 짝꿍이잖아. 시험 때마다 너는 50점인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잖아.”

“저리 비켜! 나의 짝꿍은 뽈개지 봉구밖에 없다. 이거 진짜 뿔난다.”

뒤로 자리뜸하던 승아는 침대에서 떨어졌다. 따라 내린 시험지는 승아의 발치에 앉는 것이였다. 시험지는 느닷없이 사람모양으로 키가 커지고 몸이 펑퍼지고 있었다. 키와 몸통이는 승아 만큼 되였는데 얼굴만은 시험지처럼 창백했다. 그애의 가슴에 50이라는 수자가 유난히 눈을 찔러왔다.

50점 애가 승아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이였다.

“사실 말해서 나는 네다. 너는 나고, 히히히…”

“뭐라구? 썩 물러가! 이 락제점수야!”

그러자 50점 애가 하얀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너는 날 싫어해도 난 네가 좋은걸. 우리는 짝꿍!”

거울을 마주한 것 같은 승아는 창피한 제 꼴을 보자 얼굴이 확 붉어졌다. 50점 애가 밉기는 요즘부터였다.

승아는 그 애를 비켜세우고 휭 문을 나섰다. 그런데 그애가 승아를 그림자처럼 쫓아오는 게 아니겠는가.

“따라오지 마. 이제부터 난 너와 놀지 않겠다.”

“흥! 난 물러서지 않을걸. 우리의 짝꿍을 그렇게 쉽게 갈라놓지는 못할걸.”

50점 애는 문득 승아를 부둥켜안으면서 하얗게 울먹거렸다.

“지난번 수학시험도 너는50점을 맞고 엄마아빠한테 꾸중을 듣더니만 성깔을 부리면서 밖을 나왔지. 넌 손다림질로 구겨진 50점을 펴놓고 보고 또 보다가 끝내 나에게 얼굴을 파묻었지. 그때 나는 너의 눈물을 닦아준 손수건이였어. 코물을 닦아준 하얀 휴지였어. 그사이 우린 너무나 정 들었어…”

50점 애의 하얀 옷소매는 눈물에 젖고 있었다. 승아의 마음이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도 잠간 사이, 승아는 주먹을 틀어쥐였다. 더 이상 50점 애와 짝꿍으로 지낼 수가 없다고 맘 먹었다.

다른 애들보다 여러 과목성적에서 많이 뒤처졌지만 승아는 이제부터라도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으려고 두 주먹을 부르쥐였다. 그런 승아는 힘찬 걸음으로 50점 애를 뒤떨구려고 서둘렀다.

눈치 빠른 50점 애는 문득 승아 앞에 하얀 무릎을 꿇는 것이였다.

운다. 웃는다. 매달린다. 엎드리기까지 했다. 잇따라 흐느끼며 애걸하는 게 아니겠는가.

“우린 진짜 한몸 같아서 그 이름도 학교에서 다 아는 ‘50점 승아’인 거야. 제발 날 버리지 말아줘. 나는 네가 없인 못살아. 으흐흑…”

대뜸 얼굴이 근엄해진 승아는 시를 읊듯이 웨쳤다.

“악취의 눈물을 거둬라! 기만의 웃음은 비켜서라!”

그러자 50점 애는 승아의 굳은 마음을 아주 깨뜨려버리려고 우습강스럽고 괴상적은 춤을 추면서 이번엔 노래말로 지껄이는 것이였다.

“우리 둘이 튼튼히 손만 잡으면/ 시험마다 50점이 대수롭지 않을 거야/ 공부하기 싫은 판에 춤이 나올 거야 / 코노래가 절로 나올지도 모를 거야…”

승아는 진저리가 났다. 다시는 이런 너절한 꼼수에 넘어갈 승아가 아니였다.

주먹을 쳐든 승아는 담찬 용사마냥 부르짖었다.

“징그러운 춤은 보기도 싫다! 유혹의 노래 따윈 썩 물러가라!.”

그러자 50점 애는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이를 악물더니 하얀 벽마냥 승아 앞을 막아서는 것이였다.

“우리 게임하자! 네가 주먹으로 나를 쳐서 이기면 우리의 짝꿍은 끝나는 게다. 내가 너를 쓰러뜨리면 우리 짝꿍은 다시 살아나는 게다. 알았지?!”

하얀 바람덩이처럼 50점 애가 링 우로 날아올랐다.

승아는 그 애와 마주섰다.

두 애는 펀치를 날리기 시작한다. 50점 애는 하얀 번개빛의 ‘련결치기’로 승아를 링 구석으로 다몰아가고 있었다. 왼손으로 턱을 막으면서 승아는 뒤로 물러서는 척하다가 몸을 옆으로 빼면서 50점 애의 하얀 허리에 드센 펀치를 안겼다. 온몸으로 번져오는 아픔에 50점 애는 비칠했다. 그것도 한찰나. 그 앤 몸의 중심을 대뜸 왼발에 실으면서 하얗게 달아오른 오른쪽 펀치를 날렸다. 꽤 무거운 장끼를 뽐내준 강타였다. 눈앞이 아찔해난 승아는 등뒤쪽으로 바줄을 틀어잡고 흔들거리다가 세차게 앞으로 떠밀리는 힘을 빌어서 온몸을 50점 애의 하얀 가슴에 던졌다. 잇따라 빛발치는 스피드의 ‘력점치기’로 50점을 과녁으로 치명타를 박아주었다.

승아의 눈앞에서60, 70, 80, 90…이라는 수자가 꼬리를 물고 꽃불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은 승아가 시험지 50점에 주저앉지 않고 일어나 남몰래 억센 날개를 펼친 배움 속의 빛나는 기상이리라!

폭풍처럼 다닥치는 승아의 펀치에 얻어맞아 넋을 잃은 50점 애는 끝내 하얀 무릎을 꿇었고 새하얗게 얼어붙은 머리를 떨구었다.

재판관이 승아의 손을 거뜩 들어 머리우에 추켜세웠다.

그러자 황금띠가 날아와 승아의 허리에 기발처럼 휘감겼고 그 애의 가슴에는 100점 매긴 시험지의 빨간 수자가 해살처럼 나붓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