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부가 중국을 통치하기 시작하자 연변지역은 ‘봉금령’으로 장장 200여년간 인가가 없는 황량한 곳으로 남게 되였습니다. 대신 땅은 옥토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두만강을 사이두고 조선 땅은 내란과 외환에 자연재해까지 겹쳐 굶어죽고 얼어죽는 사람이 거의 집집마다 있을 정도였습니다. 앉아서 굶어죽으면 어떻고 월강하다 잡혀죽으면 어떠하랴. 담이 큰 사람들이 비밀리에 월강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두만강을 건너 아침저녁으로 오가면서 가만히 농사를 짓다가 일부 사람들은 아예 두만강을 넘어 깊은 산속에 들어가 부대농사를 하거나 당지 주민들의 농막에서 끼살이를 하면서 점차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1875년 봉금령 취소, 1883년에 청정부는 조선 리조정부와 ‘북천과 조선변민 교육장정’을 체결하고 1885년에 화룡현(지금의 룡정시 지신향) 소재지에 통상국을 세웠으며 두만강 이북의 길이 700여리, 너비 50여리에 달하는 구역을 조선 이주민들의 개간구역으로 확정한 후 행정관리를 강화하였습니다. 조선에서도 월강금지령을 페지하고 강북에로의 이주를 격려하였습니다. 봉금령의 취소는 수천수만명의 조선사람을 터진 홍수마냥 연변지구로 밀려들게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은 대부분이 조선 함경도에서 연변땅에 이주한 조선사람으로서 ‘범월잠입(犯越潜入)’시기부터 두만강 북안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조선 이주민들의 전문 개간구역의 확립은 연변지역 조선족민족공동체의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주었으며 연변을 제일 큰 조선족집거지로 되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