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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소년

<자치주 성립 경축의 노래> 를 작곡하신 김성민 할아버지는 1924년 3월 13일, 조선 경상남도 울산군 온산면 방도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는 노래를 특별히 잘 불렀답니다. 흘러간 옛 노래 <백마강>을 너무나 잘 불러 ‘백마강’이란 별명을 가졌다는 김성민 할아버지랍니다.

어려서부터 남보다 키가 훤칠하게 큰데다가 잘생겨 뭇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하에서 가수로 되려던 그의 꿈은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노래공부를 하자 해도 할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7살 되던 1941년도에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대구공업직업학교 광산과를 졸업하고 1943년부터 경상남도 포항탄광주식회사 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하였습니다.

일제하의 조선에서는 자기의 꿈을 이룰 수 없음을 안 김성민 할아버지는 가족, 친척들과 함께 단연 중국 흑룡강성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때 그는 벌써 결혼한 몸이였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덕으로 김성민 할아버지는 1943년에 흑룡강성 오림현 북전자촌 고산툰 조선족소학교에서 음악교원으로 되였습니다. 그는 매일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면서 음악공부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업으로 음악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김성민 할아버지는 오선보를 배우고 손풍금연주를 배워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민족악기연주도 배워냈습니다. 그러던차 1945년 동북이 해방되자 김성민 할아버지는 1946년에 목단강시 조선족소학교 음악교원으로 발탁되였습니다.

목단강에서 김성민 할아버지는 우연히 김례삼이라는 분을 알게 되였습니다.

김례삼은 중국조선족아동문학창작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한 분이며 친구들이 잘 알고 있는 동요 <고개길>을 쓴 분이십니다.

김례삼 할아버지도 1935년에 고국을 떠나 흑룡강성 목릉현에 정착하여 교원, 간판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해방을 맞아 혁명공작에 참가하게 되였습니다. 그는 선후로 흑룡강성 시민운동공작과 토지개혁에 참가하였고 민주동맹기관지 편집, 목단강시민맹문공단 단장, 목단강시민족문공단 부단장, 송강성로예문공단 단장으로 활약하였습니다.

김성민 할아버지와 김례삼 할아버지의 연분은 바로 이때 맺어졌던 것입니다. 그때 김례삼 할아버지는 김성민 할아버지보다 11살 선배였습니다.

김성민 할아버지의 원명은 김우상(金愚尚)이였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고 음악에 흥취를 갖고 있는 김성민 할아버지를 발견한 김례삼할아버지는 앞으로 인민의 가수가 될 것을 바란다면서 김성민(金成民)이라고 새 이름을 달아주었습니다.

1948년부터 김성민 할아버지는 선후로 목단강시 조선족문공단,할빈 로신문공단 조선족대 음악지도원으로 활약하였습니다. 1951년 1월, 로신문공단과 연변문공단(연변가무단의 전신)이 합치면서 김성민 할아버지는 연변가무단에 와서 성악지도원, 악대연주원, 민요독창가수, 창작실 창작원 및 부단장 등 여러 직책을 맡으셨습니다.그때 그는 30살 미만이였습니다.

<자치주 성립 경축의 노래>의 탄생

김성민 할아버지는 작곡가로서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판소리, 민요 가수로서 무대에서 좋은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손풍금 연주자로서도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는 작곡가이면서 가수이면서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였습니다. 1950년 10월 1일에 새중국 1주년 기념파티를 수도 북경에서 하게 되였는데 모택동, 주은래 등 지도자들이 전국 각지에 있는 소수민족대표들을 회인당에 초청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온 대표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반주도 하시면서 중국 조선족의 새로운 해방, 새로운 시기를 맞는 기쁨을 당중앙에 그대로 전해주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자치주 성립 경축의 노래>가 창작되게 된 배경에 대해서 력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952년 여름, 당시 연변전원공서 선전부장이였던 최채 동지의 지시로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성립 경축일에 부를 노래를 창작하기 위한 좌담모임이 연길에서 소집되였습니다. 이날 좌담회에 참가한 연길시문예사업일군들은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의 성립과 함께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침략하에 조선족들이 자기 언어문자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던 데로부터 국가의 주인으로 되였고 자유롭게 자기 언어문자로 창작하고 자치권리를 향수할 수 있게 되였다는데서 크게 고무받았으며 드높은 창작열의와 적극적인 반응들을 보였습니다.

좌담회 후 문예사업일군들은 분분히 필을 들고 경축대회에서 부를 노래를 창작하였는데 창작된 허다한 노래들 속에서 차창준 작사, 김성민 작곡으로 된 <자치주 성립 경축의 노래>가 단연 농후한 민족분위기와 명절분위기를 노래에 남김없이 담아내여 경축활동의 노래로 선정되였습니다.

이 노래는 연변의 조선족군중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자치권리를 부여받은 기쁨과 격정을 흥겹고 즐거운 노래가락에 담아낸 불후의 명곡이며 6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만백성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대표적인 노래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흘러간 옛 노래 <백마강>을 부르던 소년이 두만간기슭에서 가수의 꿈을 피워냈고 또 불후의 명곡 <자치주 성립 경축의 노래>를 작곡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였지만 그의 아들 김상운 가수는 연변 뿐만아니라 전국 조선족들의 환영을 받는 대중가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두 손자는 지금 중앙음악학원과 연길시신흥소학교에서 할아버지의 소원과 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백제의 제일 큰 강’이란 뜻으로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킬로메터의 금강을 일컬었던 백마강, 백마강은 또한 일본, 신라, 당나라, 서역에 이르도록 문물교역의 큰 길목이 되였던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 소년의 꿈은 이룰 수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해방을 맞은 김성민 할아버지는 끝내 장백산 아래 두만강기슭에서 자기의 꿈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림철 기자